존스의 논리
요한계시록 14장의 첫째 천사는 뒤따르는 두 천사와 분리될 수 없다는 존스의 논리는 확고하다. 이 세 천사와 나팔 천사들이 구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그의 지적에도 전혀 허점이 없다. 그가 강조한 대상은 분명 요한계시록 14장의 세 천사였지만, 그들을 “분리할 수 없는” 존재로 보는 논리는 그들에 앞서 등장하는 모든 천사에게도 똑같이 타당하게 적용된다.
그는 요한계시록 14장의 세 천사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논리를 궁극적인 결론에 이르기까지 전개하지는 않았다. 궁극적으로 그가 다섯째, 여섯째, 일곱째 재앙의 나팔을 요한계시록 14장의 세 천사와 연결하는 데 사용한 논리에는 나팔들의 흐름을 일곱 나팔 천사 중 첫째 천사에 이르기까지 거슬러 추적하는 것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또 내가 보니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일곱 천사가 있어 그들에게 일곱 나팔이 주어졌더라. … 일곱 나팔을 가진 일곱 천사가 나팔을 불려고 준비하더라. 요한계시록 8:2, 6.
천사들의 계열은 “일곱” 나팔 천사로 시작되며, 요한계시록에서 이 계열은 첫째 나팔에서 시작하여 짐승의 표에 관한 셋째 천사의 경고에 이르기까지 계속된다. 존스가 처음 네 나팔과 마지막 세 화의 나팔을 구별한 것은 옳다. 그러한 “넷과 셋”의 예언적 구조가 교회들과 인들에서도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를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세 증인의 증언에 근거하여 확립하면, 보고자 하는 이들은 상징으로서의 일곱 안에 상징으로서의 넷과 상징으로서의 셋도 포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신성한 연결
최근 우리가 밝혀 온 바는 요한계시록 14장의 첫째와 둘째 천사가 첫째와 둘째 화와 관련된 이슬람의 기간 예언을 통해 권능을 부여받으며, 셋째 천사에 대한 권능 부여는 9/11에 셋째 화가 성취됨으로써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존스의 적용이 밝혀 주는 바는(비록 그가 나의 논점을 제시한 것은 아니지만) 요한계시록 8장의 첫째 나팔 천사부터 요한계시록 11장의 셋째 화의 나팔에 이르기까지 모든 천사가 요한계시록 14장의 세 천사와 불가분의 관계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동일한 예언의 흐름에 속하는 상징들이다. 각 천사가 표상하는 다양한 역할을 이해하려면 이들을 그러한 상징으로 인식해야 한다. 따라서 일곱 교회와 일곱 인과 일곱 나팔이 일곱을 나타내며, 또한 일곱(교회, 인, 나팔)이라는 전체적인 상징 체계 안에서 넷과 셋의 상징도 나타내는 것과 마찬가지로, 일곱 나팔 천사 중 첫째 천사부터 셋째 천사에 이르기까지 이어지는 천사들의 계열을 하나의 전체로 보아야 한다. 이로써 열한 천사로 이루어진 하나의 계열이 확인된다.
요한계시록 14장의 세 천사는 심판의 시작을 선포한 밀러파의 경고의 기별과, 그 이후 심판의 마침을 선포하고 있는 십사만 사천의 경고의 기별을 대표한다.
일곱 나팔은 태양 숭배를 강요한 나라들 위에 심판을 내리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섭리적으로 사용하신 권세들을 나타낸다.
처음 네 나팔은 476년에 이르기까지 서방 로마가 점진적으로 멸망해 가는 과정을 밝혀 준다.
다섯째와 여섯째는 1449년부터 1453년에 이르기까지 동로마의 멸망을 밝혀 준다.
마지막 세 나팔은 세 화의 이슬람을 나타낸다.
요한계시록 10장의 천사는 그리스도이시며, 그분은 초기에 이 운동에 능력을 부여하시기 위해 내려오시고, 요한계시록 18장에서는 마지막에 이 운동에 능력을 부여하시기 위해 다시 내려오신다.
일곱째 나팔은 대속죄일의 실체인 심판이 시작된 1844년 10월 22일에 울리기 시작하였다. 희년의 나팔은 대속죄일에 불도록 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심판 때에는 희년의 나팔과 일곱째 나팔, 이 두 나팔이 울린다.
너는 일곱째 달 열째 날에 희년의 나팔을 불게 하되, 곧 속죄일에 너희 온 땅에 두루 나팔을 불게 할지니라. 너희는 오십 년째 해를 거룩하게 하여 그 땅의 모든 주민에게 자유를 선포하라. 이 해는 너희에게 희년이니, 너희는 각기 자기 소유로 돌아가며 각기 자기 가족에게로 돌아갈지니라. 그 오십 년째 해는 너희에게 희년이니, 너희는 씨를 뿌리지 말며, 스스로 난 것을 거두지 말고, 손질하지 아니한 포도나무의 포도도 거두지 말지니라. 레위기 25:9–11.
레위기의 바로 다음 장에 있는, 이스라엘이 “일곱 때” 동안 흩어질 것임을 밝히는 문맥은, 속죄일에 희년의 나팔을 불도록 하는 명령으로 이어지는 구절들 속에 제시되어 있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그들에게 이르라. 너희가 내가 너희에게 주는 땅에 들어가거든, 그 땅으로 여호와 앞에 안식년을 지키게 할지니라. 너는 여섯 해 동안 네 밭에 파종하고 여섯 해 동안 네 포도원을 가꾸며 그 열매를 거둘 것이나, 일곱째 해에는 그 땅으로 쉬는 안식년, 곧 여호와를 위한 안식이 되게 할지니 너는 네 밭에 파종하지 말고 네 포도원을 가꾸지 말며, 네 수확 후에 저절로 난 것을 거두지 말고 손질하지 아니한 네 포도나무의 포도도 따지 말라. 이는 그 땅의 쉼의 해이기 때문이라. 그 땅의 안식년의 소출은 너희의 먹을 것이 되리니, 너와 네 남종과 네 여종과 네 품꾼과 너와 함께 거류하는 네 타국인과, 네 가축과 네 땅에 있는 들짐승에게 그 모든 소출이 먹을 것이 되리라. 너는 일곱 안식년을 셀지니, 곧 일곱 번의 칠 년이라. 그 일곱 안식년의 기간은 네게 사십구 년이 되리라. 레위기 25:2–8.
밀러는 26장에서 이스라엘이 그 땅에 대한 안식년의 쉼을 범한 것에 대한 심판을 인식했을 때, 하루가 일 년을 나타낸다는 원칙을 적용하여 한 해가 삼백육십 일이며, 삼백육십의 일곱 배가 언약을 범한 데 대한 이천오백이십 년의 형벌이라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이것은 그가 발견한 최초의 예언적 진리였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밀러의 사역을 통하여 세우신 기초를 이루는 진리들의 기초이다. 희년의 나팔은 구원과 자유의 선포이다.
일곱째 나팔은 셋째 화의 이슬람이다.
일곱째 천사의 음성이 나는 날들에, 곧 그가 나팔을 불기 시작할 때에, 하나님의 비밀이 마쳐지리니, 그가 그의 종 선지자들에게 선포하신 바와 같으니라. 요한계시록 10:7.
이슬람의 일곱째 나팔은 외적인 예언적 진리이며, 희년의 나팔은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곧 죄로부터의 구원—의 내적인 예언적 진리인데, Sister White에 따르면 이것은 참된 의미에서 셋째 천사이다. 일곱째 나팔이 울려 퍼지는 기간에,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 곧 영광의 소망이라는 비밀은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신성을 십사만 사천의 인성과 결합시키실 때 완전하게 될 것이다. 그때 하나님의 인을 받는 자들은 셋째 화로 표상되는 경고의 나팔 기별, 또한 셋째 천사의 경고를 선포할 것이다. 셋째 화는 예수 그리스도보다 못하지 않은 인격체이신 그 천사가 손에 기별을 가지고 내려올 때 셋째 천사의 기별에 능력을 부여한다.
우리가 첫째 화와 둘째 화의 때에 관한 예언이 첫째 천사의 기별에 능력을 부여하였고, 셋째 화에 관한 예언이 셋째 천사의 기별에 능력을 부여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때, 우리는 나팔들을 ‘일요일 준수 강요에 대한 응답으로 로마 위에 내려진 심판들’로 확인하는 것이다. 그러한 섭리적 심판들, 특히 마지막 세 화의 나팔은 요한계시록 14장의 세 천사의 경고 기별과 일치하며 평행을 이룬다. 밀러 운동의 역사에서는 두 화와 두 천사가, 그리고 십사만 사천의 역사에서는 셋째 화와 셋째 천사가 그러하다. 첫째와 둘째 천사의 초기 역사에서는 심판의 시작을 알리는 기별이 첫째 화와 둘째 화에 대한 이슬람의 성취를 통하여 능력을 부여받았다. 셋째 천사의 마지막 역사에서는 심판의 종결을 선포하는 기별이 셋째 화에 대한 이슬람의 성취를 통하여 능력을 부여받았다.
시작과 끝에서의 능력 부여는 요한계시록 10장과 18장의 천사로 표상되었는데, 그는 “예수 그리스도 외 다른 인물이 아닌 분”이었다. 이슬람의 외적 기별과 심판의 내적 기별은 외적 셋째 화의 나팔이며, 심판의 내적 기별은 셋째 천사의 나팔이다. 이슬람의 외적 나팔은 이천오백이십 년의 예언이며, 셋째 천사의 내적 나팔은 이천삼백 년이다. 이 둘은 모두 죽은 자들의 심판이 시작될 때 이르러 울렸고, 또 둘 다 산 자들의 심판이 시작될 때 다시 이르렀다.
요한계시록 10장의 천사는 이슬람에 관한 예언의 성취로서 1840년 8월 11일에 내려왔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그 천사는 또한 이슬람에 관한 한 예언의 성취와 더불어 요한계시록 18장의 천사가 내려오는 일을 예표하였다. 321년에 있었던 일요일 법령의 반역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이어 538년에 다시 있었던 그 반역에 대한 그분의 심판은 처음 여섯 나팔로 표상되며, 곧 다가올 일요일 법령의 반역에 대한 그분의 심판은 일곱째 나팔로 표상되는데, 그것은 셋째 화이며 또한 셋째 천사이다. 1844년 10월 22일에 시작된 심판의 경고 기별과 9/11에 있었던 산 자의 심판의 경고 기별은 둘 다 존스가 제시한 순서 가운데 일곱째 천사에 의해 능력을 부여받았다. 8장과 9장에는 여섯 나팔 천사들이 나오고, 이어 10장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보다 못하지 않은 위격이신 천사가 내려온다. 그는 천사들의 순서 가운데 일곱째이며, 그 뒤를 이어 11장에서는 셋째 화가 나오는데, 그것은 1844년에 나팔을 불기 시작한 일곱째 나팔이지만, 요한계시록 14장의 아홉째, 열째, 열한째 천사들로 이어지는 천사들의 계열에서는 여덟째이다.
셋째 천사의 기별은 첫째와 둘째 천사의 기별로부터 분리될 수 없으며, 또한 배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나타내는 일곱 나팔로부터도 분리될 수 없다. 요한계시록 8장에 나오는 처음 네 나팔의 심판은, 321년에 콘스탄티누스가 제정한 첫 번째 일요일 법 이후 서방 로마가 점진적으로 몰락해 가는 과정을 보여 주며, 330년에 그가 제국을 동서로 분할한 때에 시작되었다.
“우리 나라가 그 입법 의회에서 사람들의 종교적 특권에 관하여 그들의 양심을 속박하는 법들을 제정하고, 일요일 준수를 강요하며, 제칠일 안식일을 지키는 자들을 대적하여 압제적 권력을 행사하게 될 때, 하나님의 율법은 우리 땅에서 사실상 무효가 될 것이며, 국가적 배도는 국가적 멸망으로 뒤따르게 될 것이다.” Review and Herald, 1888년 12월 18일.
국가적 배교가 국가적 파멸을 초래한다는 원칙은 476년까지 서로마를 멸망에 이르게 한 첫 네 나팔을 시작으로 콘스탄티누스의 나라에서 현실로 나타났다. 동로마는 1453년에 멸망했지만, 예언상으로는 1449년 7월 27일에 이미 국가 주권을 상실했다. 하룻밤 사이에 무너진 바벨론과 달리, 로마는 서로마와 동로마 모두 점진적으로 멸망에 이르렀다. 첫 네 나팔 아래에서 476년까지 이루어진 서로마의 멸망은 네 나팔 아래에서 일어나는 미국의 멸망을 표상하며, 이는 한 차원에서는 1798년에 시작되어 일요일 법령에 이르러 끝나는 미국의 네 세대를 표상한다. 그 네 세대는 재림교회의 네 세대와 평행을 이루며, 재림교회의 네 세대는 요한계시록 2장의 첫 네 교회, 에스겔 8장에 나오는 점점 더 심해지는 네 가지 가증한 일, 그리고 요엘서에 나오는 네 차례에 걸친 메뚜기 떼와 평행을 이룬다.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내가 예루살렘에 나의 네 가지 무서운 심판, 곧 칼과 기근과 사나운 짐승과 전염병을 보내어 그 가운데서 사람과 짐승을 끊어 버릴 때에야, 하물며 어떠하겠느냐? 에스겔 14:21.
다섯째와 여섯째 나팔은 동로마를 무너뜨렸으며, 서로마와의 예언적 관계에서 동로마는 국가를 상징한다. 서로마는 교회를 상징한다. 서로마는 또한 미국을 상징하는데, 미국은 서로마가 그랬던 것처럼 먼저 정복당한다.
“종교적 자유의 땅인 미국이 교황권과 연합하여 양심을 강요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거짓 안식일을 존중하도록 강제하게 될 때, 온 지구상의 모든 나라의 백성들은 그 본을 따르도록 이끌리게 될 것이다.” Testimonies, volume 6, 18.
처음 네 나팔은 미국 역사의 네 세대를 대표하며, 미국이 무너질 때 다니엘 11장 41절의 영화로운 땅이 막 함락된 것이고, 다음 장애물은 세상 나머지 나라들의 상징인 애굽이다. 그때 열 왕인 국제연합은 요한계시록 17장에서 말하는 바와 같이 “잠시 동안—한 시간” 자기들의 일곱째 왕국을 교황권에게 주기로 동의한다. 이것은 헤롯의 생일 잔치에서 그가 자기 왕국의 절반을 약속할 때에 일어난다. 헤롯의 생일 잔치에서, 바로 그 시간에 글씨가 벽의 회반죽 위에 나타나고 벨사살이 죽임을 당한다. 그 한 시간은 일요일 법에서 이르러 인간의 은혜의 시기가 마칠 때까지 계속된다. 일곱째 왕국은 1453년에 무너져 내린 콘스탄티노플 성벽의 파괴로 예표된 바와 같이 정복된다. 미국의 일요일 법으로부터, 1449년으로 예표된 때에서부터, 1453년 콘스탄티노플의 함락에 이르기까지는 상징적 4년이다. 교황권은 1798년에 그 치명적인 상처를 받았다.
다니엘 11장 40절에서 교황권은 마지막 때인 1798년에 무너졌다. 그리고 남방 왕은 마지막 때인 1989년에 무너졌다. 미국은 41절에서 무너지고, 애굽은 42절에서 무너지며, 교황권은 45절에서 두 번째이자 최종적인 몰락에 이른다.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에 분명히 나타난 나라들의 흥망성쇠를 통하여, 우리는 단지 외적인 세상 영광이 얼마나 무가치한지를 배워야 한다. 모든 권세와 장엄을 지녔던 바벨론, 곧 그 이후로 우리 세상이 다시는 보지 못한 그러한 권세와 장엄, 그리고 그 시대 사람들에게는 그토록 견고하고 영속적인 것으로 보였던 그것이 얼마나 완전히 사라져 버렸는가! ‘풀의 꽃’처럼 그것은 멸망하였다. 야고보서 1:10. 메대-바사 제국과 헬라와 로마의 제국들도 그와 같이 멸망하였다. 그리고 하나님을 그 기초로 삼지 않은 모든 것도 이와 같이 사라진다. 오직 그분의 목적과 결부되어 있고 그분의 품성을 나타내는 것만이 견딜 수 있다. 그분의 원칙만이 이 세상에서 우리가 아는 유일한 확고한 것들이다.” 선지자와 왕, 548.
41절에 나오는 미국(거짓 선지자)의 몰락은 1449년에 의해 예표되었고, 42절에 나오는 애굽(용)의 몰락은 1453년에 의해 예표되었으며, 교황권(짐승)은 1798년에 의해 예표된 바와 같이 도와줄 자가 없이 그 종말에 이른다. 거짓 선지자와 용은 나팔 세력들에 의해 무너지고, 짐승은 용의 세력에 의해 무너진다.
숫자 4는 왕국의 해체를 상징한다. 알렉산드로스의 왕국은 네 왕국으로 분열되었고, 애굽은 네 번째 세대에 홍해에서 몰락했으며, 이스라엘은 에스겔 8장에 나오는 네 번째 가증한 일에서 태양을 향해 절하고 있다. 땅에서 올라온 짐승에 속한 개신교와 공화주의의 네 세대는 두 뿔 모두에서 1798년에 시작되어 곧 도래할 일요일 법령 때 끝난다. 에스겔서에 나오는 예루살렘에 대한 네 가지 중한 심판은 미국에 대한 네 가지 심판을 보여 주며, 성경 예언의 여섯 번째 왕국에 대한 그 네 가지 심판은 1449년부터 1453년까지의 4년을 예표한다. 이때 성경 예언의 일곱 번째 왕국은 두로의 음녀가 지배하는 정교 결합 관계 속에서 자기 왕국의 절반을 교황권에 넘겨주기로 합의한다.
1449년부터 1453년까지의 네 해는 일요일 법령에서 일곱째 왕국의 멸망을 표상하며, 또한 일요일 법령부터 은혜의 시기가 마치는 때까지 여덟째 왕국의 멸망의 기간을 표상한다. 세상이며 또한 교황권에게 주어진 용인 애굽의 정복은, 1449년부터 1453년까지의 네 해로 상징되는 기간의 시작 부분에 있는 하나의 프랙털이다. 이것은 일요일 법령에서의 콘스탄티노플의 함락을 가리키며, 이어서 미가엘이 일어설 때 다시 한 번 그러하다. 미가엘이 일어설 때, 영감의 말씀에 따라 네 천사는 완전히 놓이게 된다.
“나는 네 천사가 성소에서의 예수님의 사업이 마쳐질 때까지 사방의 바람을 붙들고 있을 것이며, 그 후에 일곱 마지막 재앙이 이를 것을 보았다.” 초기문집, 36.
알렉산드로스 왕국이 나뉜 네 나라, 서로마에 임하는 네 나팔, 동로마에 풀려나는 네 바람, 예루살렘에 임하는 네 가지 혹독한 심판, 교황권이 도와줄 자 없이 종말을 맞을 때 풀려나는 네 바람. 이와 같은 예언적 상징들을 제시한 토대 위에서, 우리는 곧 다가올 일요일 법령의 시점에 둘째 화를 적용하는 맥락에서 이를 고찰할 것이다.
피렌체 공의회
1439년 피렌체 공의회(피렌체 연합이라고도 불림)에서 동방 정교회의 대표자들(비잔틴 황제 요한네스 8세 팔레올로고스와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가 이끔)은 로마 가톨릭교회와의 공식적인 연합 칙령에 서명하였다. 그들은 로마의 교황을 전체 교회의 수장(최고 권위)으로 인정하는 데 동의하였다.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되심과 같음이니, 그가 곧 몸의 구주시니라. 에베소서 5:23.
니케아 신경
황제와 총대주교는 니케아 신경에 첨가된 문구인 “필리오케 조항”을 받아들였는데, 이는 성령이 성부와 성자에게서 발출하신다고 주장하는 것이었다. 니케아 신경은 가톨릭 신앙의 역사 안에서 가장 중요하고 가장 널리 사용되는 신앙 고백문들 가운데 하나이다. 니케아 신경은 가톨릭의 핵심 신앙을 공식적으로 요약한 것이다. 이것은 본래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이신가에 관한 진리를 수호하기 위하여 작성되었다. 325년에 아리우스라는 이름의 한 사제가 예수께서 성부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셨으며 완전한 하나님이 아니라고 가르쳤기 때문에 중대한 논쟁이 일어났다.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1차 니케아 공의회를 소집하였다. 공의회는 예수께서 완전한 하나님이시며 성부와 “동일한 본질”을 지니신 분임을 확고히 천명하였다. 이 신조는 이후 381년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에서 증보되었다. 이 대목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니케아 신조가 콘스탄티누스 1세 시대의 역사 속에서 확립되었으며, 훗날 동방 비잔틴 제국의 마지막 황제였던 콘스탄티누스 11세, 곧 마지막 콘스탄티누스에게도 쟁점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콘스탄티누스 1세인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성경 예언에서 거듭 다루어지는 인물이다. 그는 동방 제국이 시작될 때의 통치자이므로 동방 제국이 끝날 때의 통치자를 예표한다. 알파와 오메가의 원리를 이해하는 예언 연구자라면, 니케아 신조가 시작의 역사와 끝의 역사 모두에 포함된 요소라는 사실에 반드시 주목해야 한다.
381년에 니케아 신경은 연옥 교리와 성찬 교리로 갱신되었으며, 성찬에 무교병을 사용하는 것을 받아들였는데, 이는 라틴 관행이었다. 381년의 이 신경은 또한 원죄와 내세에 대한 가톨릭의 이해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핵심 구절로 끝맺었다. “또한 우리는 거룩한 사도좌와 로마 교황이 온 세계에 대한 수위권을 지니며 그리스도의 참된 대리자임을 규정한다.”
피렌체 공의회에서는 1453년 콘스탄티노플이 오스만 투르크에게 함락되기 14년 전인 1439년 7월 6일에 또 하나의 수정된 판본이 서명되었다. 그 연합은 중대한 정치적 압박 아래에서 서명되었다. 비잔틴 제국은 진격하는 오스만 세력에 맞서기 위해 서방으로부터의 군사적 원조를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었다. 그리스 대표들이 귀국했을 때, 그 합의는 동방의 성직자들, 수도사들, 그리고 일반 백성들의 대다수에 의해 강력히 거부되었다. 이에 서명했던 주교들 가운데 대부분도 나중에 그 지지를 철회하였다. 그 연합은 끝내 온전히 시행되지 못하였고, 이어지는 세월 동안 동방 정교회에 의해 공식적으로 부인되었다. 1453년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될 무렵에는, 그 연합은 이미 사실상 붕괴된 상태였다. 역사가들은 이를 흔히 심대한 신학적, 문화적, 그리고 민중적 저항으로 인해 실패한 정치적 연합으로 묘사한다.
325년에 열린 제1차 니케아 공의회에서 니케아 신경이 채택되었다. 그 시점은 다니엘서 11장 24절에서 “한 때”로 표현된 360년의 기간이 끝난 해인 330년보다 5년 전으로 표시되어 있다.
그는 평안히 그 지방의 가장 기름진 곳들까지 들어가서, 그의 조상들도 하지 못하였고 그의 조상들의 조상들도 하지 못하였던 일을 행할 것이며, 탈취물과 노략물과 재물을 그들 가운데 흩어 줄 것이요, 또한 한동안은 견고한 요새들을 대적하여 자기의 계책을 꾸밀 것이다. 다니엘 11:24.
기원전 31년과 서기 330년은 모두 다니엘서 11장 27절과 29절에 나오는 “정한 때”에 해당한다.
이 두 왕의 마음은 악을 행하려는 데 있을 것이요, 그들은 한 상에서 거짓을 말할 것이나, 그 일이 형통하지 못하리니 이는 아직 끝이 정한 때에 이를 것임이라. … 정한 때에 그가 다시 돌아와 남방으로 나아갈 것이나, 이번에는 이전과 같지 아니할 것이며 나중과도 같지 아니하리라. 다니엘 11:27, 29.
동로마에 관한 예언의 흐름에서 시작(330년)과 끝(1449–1453년)은 콘스탄티누스라는 이름을 지닌 첫 황제와 마지막 황제로 표상된다. 비잔틴 제국이라 불리는 동로마에 관한 예언의 흐름에서 알파와 오메가는, 제정 로마가 기원전 31년 악티움 해전부터 330년까지 절대적 지배권을 행사했던 360년의 끝과 연결되며, 그 이후 1453년까지 이어진다. 기원전 31년 악티움 해전 이전에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와 아우구스투스 카이사르는 한 식탁에서 거짓말을 했으나, 그 일은 형통하지 못했다. 330년 이전인 325년에 니케아 신조가 채택되었다. 1453년 이전에는 바로 그 니케아 신조의 개정판이 채택되었다. 기원전 31년 이전에는 두 정치 지도자가 한 식탁에서 거짓말을 했다. 325년에는 한 식탁에서 영적 거짓말이 오갔다. 그 두 증인은 1439년 피렌체 공의회에서 채택된 정치적 거짓말과 영적 거짓말을 밝혀 준다. 그 개정된 니케아 신조는 일치 교령이라 불렸다.
한 식탁에서 거짓말을 하는 첫 번째 이정표는 기원전 31년 이전에, 이교 로마의 두 정치 세력 사이에서 나타났다. 그 거짓말에 대해 정해진 때는 기원전 31년이었으며, 그 구도는 로마를 상징하는 아우구스투스가 이집트를 대표하는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연합 세력에 맞서는 것이었다. 두 번째 일련의 거짓말은 325년에 있었으며, 정해진 때는 330년이었다. 세 번째 일련의 거짓말은 1439년에 있었으며, 정해진 때는 1449–1453년이었다. 1439년에 그 식탁에 앉은 이들은 서로마와 동로마를 대표했으며, 동로마는 종교적 주장에 동의함으로써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고자 했다. 기원전 31년과 그 뒤를 이은 330년, 그리고 1453년은 로마의 노선이 삼중으로 적용됨을 나타낸다.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의 동맹이 초래한 정치적 위협은 325년 아리우스주의 이단의 영적 위협을 예표하였으며, 이는 다시 1439년 이슬람교를 믿는 튀르크족의 정치적·종교적 위협을 예표하였다.
니케아 신경의 교리들은 거짓이며 그 안에는 진리가 전혀 없다. 1439년 7월 6일 피렌체 공의회에서 서명된 문서는 「연합 칙령」이라 불렸는데, 그것은 동일한 거짓들과 그보다 더한 것들을 나타내었다. 1439년에 사절들이 콘스탄티노폴리스로 돌아왔을 때, 그들은 분노와 배신이라는 비난에 직면하였다. 다음과 같은 말이 널리 퍼졌다. “교황의 주교관보다는 차라리 터키인의 터번이 낫다.”
그 연합은 주로 비잔틴 황제가 오스만 제국에 맞서기 위하여 서방의 군사적 지원을 절박하게 필요로 했기 때문에 체결되었다. 그러나 군사적 원조가 거의 오지 않거나 전혀 오지 않는다는 사실이 분명해지자, 그 연합에 대한 지지는 사라졌다. 1450–1451년에 여러 동방 시노드들이 그 연합을 거부하였고, 1453년에 콘스탄티노폴리스가 함락된 뒤에는 그 연합이 완전히 폐기되었다. 피렌체 연합 교령의 최종적 귀결은 동방 정교회에 의해 실패하고 거부된 공의회로 간주된다. 그것은 유효한 것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그러나 로마 가톨릭교회는 여전히 그것을 유효한 보편 공의회로 간주한다.
우리는 둘째 화의 예언적 특징들이 셋째 화의 역사 속에서 어떻게 반복되는지를 이해하기 위한 논리적 틀을 세우고 있다. 첫째 화의 150년 예언 기간은 1299년 7월 27일에 시작되어 1449년 7월 27일에 끝났다.
1449
콘스탄티노스 11세 팔레올로고스는 1404년에 태어나 1449년 1월부터 1453년 5월 29일까지 재위했다. 그는 1,100년 넘게 존속한 동로마(비잔티움) 제국의 마지막 황제였다. 그는 1453년 오스만 제국의 포위 공격 당시 약 7,000~8,000명에 불과한 수비군을 이끌고 80,000명이 넘는 메흐메트 2세의 군대에 맞서 콘스탄티노폴리스의 방어를 용감하게 지휘했다. 그는 콘스탄티노폴리스가 마침내 함락된 1453년 5월 29일, 성벽에서 싸우다가 전사했다. 그의 시신은 끝내 확실하게 확인되지 않았다. 그의 죽음은 로마 제국(기원전 27년 아우구스투스가 세운 제국을 직접 계승한 최후의 국가)의 종말을 의미했다.
그는 그리스 역사와 정교회 전승에서 영웅적 인물로 기억되며, 전설 속에서는 흔히 “대리석 황제”로 불린다(언젠가 그가 돌아와 콘스탄티노폴리스를 구원하리라는 믿음).
요한네스 8세 팔레올로고스(1392–1448)는 비잔티움 제국의 마지막에서 두 번째 황제로, 1425년부터 1448년까지 재위했다. 그는 마누일 2세 팔레올로고스 황제의 장남이자 콘스탄티노스 11세의 형이었다. 요한네스 8세는 재위 기간 대부분을 멸망해 가는 비잔티움 제국을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구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애쓰며 보냈다. 1439년에는 직접 이탈리아로 가서 피렌체 공의회를 주재했으며, 그곳에서 그와 동방 정교회 대표단은 로마 가톨릭교회와 재통합하고 교황을 교회의 수장으로 받아들이는 데 일시적으로 합의했다. 콘스탄티누스 대제 역시 니케아 공의회를 주재한 바 있었다. 요한네스 8세는 교황청과의 이러한 일치를 통해 튀르크인들에 맞설 서방의 군사적 지원을 얻을 수 있기를 바랐으나, 본국의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는 이 일치에 대한 반감이 매우 컸고, 결국 무산되었다. 요한네스 8세는 1448년에 사망했으며(자연사), 이는 1453년 콘스탄티노폴리스가 함락되기 불과 5년 전이었다. 이후 동생 콘스탄티노스 11세가 황제로 즉위했으며, 도시를 방어하다가 전사했다.
요한 8세가 1448년에 죽자, 그의 형제 콘스탄티노스 11세가 후계자로 선출되었다. 1448년에 이르러 비잔틴 제국은 미미한 속국에 불과하였고, 오스만은 콘스탄티노플의 왕좌에 누가 앉을지를 좌우할 만큼 중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1449년 7월 27일, 비잔틴 제국의 마지막 시기에 매우 중대한 정치적 사건이 일어났다. 비잔틴 황제 요한 8세 팔라이올로고스는 그보다 앞선 1448년에 이미 죽었다. 그의 형제 콘스탄티노스 11세 팔라이올로고스(마지막 황제)가 콘스탄티노플에서 황제로 선포되었다. 그러나 콘스탄티노스 11세는 정식으로 즉위하기에 앞서 오스만 술탄(무라드 2세)에게 사절들을 보내어 통치할 허락을 요청하였다. 술탄은 그 허락을 내렸고, 그제서야 콘스탄티노스 11세는 정식으로 대관을 받고 황제로 인정되었다. 이 행위는 비잔틴의 독립을 자발적으로 넘겨준 것으로 여겨졌다. 비잔틴 황제가 오스만 투르크의 허락에 의해서만 통치한다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인정한 것은 이것이 처음이었다. 불과 4년 뒤인 1453년, 콘스탄티노플은 오스만에게 함락되었다.
1449년 7월 27일로부터 391년 15일이 지난 1840년 8월 11일, 투르크인들은 유럽의 4대 강국에 복종함으로써 이집트의 위협으로부터 보호받고자 하였으며, 이로써 한 시간과 하루와 한 달과 일 년에 관한 예언을 성취하였다. 우리는 이제 곧 다가올 일요일 법령의 시기에 첫째 화와 둘째 화를 적용하기 위한 논리적 토대를 마련하였다. 십사만 사천 명을 상징하는 베드로는 셋째 천사의 운동을 표상하며, 윌리엄 밀러는 첫째 천사와 둘째 천사의 운동을 표상한다. 두 운동은 모두 “열쇠”와 연관되어 있다.
또 내가 다윗의 집의 열쇠를 그의 어깨에 두리니, 그가 열면 닫을 자가 없겠고, 그가 닫으면 열 자가 없으리라. 이사야 22:22.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네게 천국 열쇠를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마태복음 16:18, 19.
우리는 다음 글에서 니느웨 전투를 무저갱을 여는 “열쇠”로서뿐 아니라, 다니엘 11장의 전체 증언을 완전한 질서 속에 정렬하는 예언적 열쇠로서도 살펴볼 것이다. 밀러의 꿈에서 보석함에 달려 있던 “열쇠”는 밀러의 성경 연구 방법이었다. 밀러 운동의 역사에 대한 성구 대조법을 셋째 천사의 역사에서 “줄에 줄을 더하는” 방식과 결합하는 것이, 요한계시록 9장의 열쇠로 하여금 40절의 외적 기별에 담긴 숨겨진 역사를 열어 드러내고 질서 있게 정렬하도록 하는 열쇠이다.
우리는 다음 글에서 우리의 고찰을 계속할 것이다.
“선지자에게는 바퀴 안의 바퀴와 그것들과 연결된 생물들의 형상이 모두 복잡하고 설명할 수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무한하신 지혜의 손이 그 바퀴들 가운데 나타나며, 그 역사(役事)의 결과는 완전한 질서이다. 모든 바퀴는 다른 모든 바퀴와 완전한 조화를 이루며 움직인다.” 『목사들과 복음 사역자들에게 보내는 권면』, 214.